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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협상前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되새기자!

by 꼬마(kkorma) 2024. 11. 20.

 

 

2차 세계대전 승리의 최강국 '미국'

vs

일제통치와 뒤이은 전쟁의 상흔으로

아무것도 남은 것 없는 '대한민국'

출처 : Pixabay

'최강'과 '최빈' 국가가 조약을 맺는다.

'53.8.8. 한미상호방위조약 假조인식(출처 : 나무위키)

'상호방위조약(Mutual Defense Treaty)'

서로 지켜주겠다는 거다.

최강국만 최빈국을 지켜주는 게 아니고

최빈국이지만 최강국을 지켜주기도 하겠단다.

최소한 조약의 내용은 그렇다.

'체면 상하지 않는 협상의 결실'이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한미상호조약은

한국 입장에선 든든한 뒷배가 생긴거다보니,

국방예산 아껴 경제발전에 투자할 수 있었다.

북한 입장에선 함부로 전쟁을 못하게 만든다.

자본가들은 미국 믿고 한국에 투자할 수 있다.

한국 입장에서 너무 좋은 조약이다.

물론, 미국도 "우리편에 서면 성공한다"는

메시지를 세계 만방에 알릴 수 있게 되었다.

처음부터 이런 성공을 예상하진 않았겠지만.

 


 

이런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던 당시 상황으로 가보자.

지금의 우리가 배울 교훈이 있을 것 같다.

당시 상황은 결코 우리나라에 녹록치 않았다.

2차세계대전을 끝내고

평화를 원하던 시기였는데,

한국전쟁이 발발, 끝나질 않는다.

미국 군인들은 계속 죽어가고,

미국내 참전에 대한 회의적 분위기가 커진다.

* 연인원 178.9만명 참전, 3.6만명 전사(KIA)

전쟁에 지쳐가는 미국내 여론,

중국까지 참전하며 '3차대전' 걱정까지.

국민들 사이에서는 '회의론자'가 증가한다.

왜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 가서 죽어야 하냐고...

오죽하면 '53년 취임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주요 선거공약이 '한국전 조기종전'이었을 정도.

출처 : History on the Net

 


 

사실 휴전협상은 '51년 7월부터 있었다.

하지만, 간단치 않다. 쉽게 끝나질 않았다.

그렇게 지난한 협상이 2년을 이어온 것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당시 협상 분위기와 미국 여론을 잘 알았다.

다들 알다시피 그는 '미국통'이다.

하버드 석사, 프린스턴 박사 출신.

그런 이승만 대통령은

단순히 미국이 원하는 휴전만 해서는

언제 다시 전쟁이 날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미국과 방위조약을 체결하는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2차대전과 한국전을 겪는 미국내 여론은

해외 간섭을 자제하자는 '고립주의'로 흘러갔다.

그런데,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면 '개입'해야 한다.

그래서 주저한다.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협상이 마무리 되어가던

'53년 6월 북한 · 중국 출신 반공포로를 석방한다.

출처 :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기파랑)

당시 포로교환 문제는 휴전협상의 주요 갈등 의제.

북측은 일괄 송환을, UN군은 개인의사 반영 송환을

주장하며 갈등 중이었는데, 협상을 틀어 버린거다.

발언권도 없었는데, 협상의 영향력자가 된거다.

그러고선, 북진통일을 더 강하게 외친다.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주지 않으면

"휴전협상을 누가 어떻게 하든,

우리 단독으로라도 북진하겠다고"

미국은 당황한다.

이승만을 비난하며, 축출하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초강수를 둔 이승만이 주도권을 쥐었다.

 


 

이승만은 영리하게 대처한다.

미국에 단순히 억지만 부린게 아니라,

조약체결 필요성까지 지속적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당시 국회나 국내여론도 충분히 활용,

북진통일을 요구하는 국민 목소리도 함께 했다.

출처 : 부경근대사료연구소(공유마당)

미국 입장에선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리고선 결국엔 한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미측과의 협상에 성공했다.

미측은 '상호방위조약' 外 '경제적 지원'까지

약속하게 된다. 대신 '휴전에 동의'하라면서.

그래서, 이승만은 '암묵적'으로 동의해 주고,

이 모든 성과를 미국으로부터 가져온 것이다.

 


 

그때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우리나라의 발전은 결코 없다.

절대 있을 수 없었다고 확신한다.

 


 

혹자는 미국을 위한 불평등 조약이라고 한다.

맞다.

불평등 조약이다.

내가 당시 미국 대통령이라면

절대 이런조약 체결 안하려고 했을거다.

이름도 모르는 작은나라와 '상호방위조약'?

쉽게 생각해보자.

내가 힘이 막강한데,

아무것도 없는 힘없는 아이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애를, 지켜줘야 하나?

미국 입장에서 지나치게 불평등했다.

 


 

근데, 이런 조약이 없었다면

우리는 경제발전에 그렇게 투자할 수 없었다.

북한이 위협하는데 국방비가 더 필요했을거다.

그만큼 발전은 늦을 수 밖에 없었을거다.

그리고 어떤 분쟁이 심하게 생겼을지도 모른다.

당시 미국은 결코 우리에게,

특히, 이승만 정부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미국 국민이 더 소중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국 우선주의'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유학파'라 좋아했을거라고?

턱도 없는 상상이다.

심지어 이승만 대통령 축출까지 검토할 정도였는데.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그 모든 상황을

지혜롭고 현명하게 대처하고,

결국엔 더 많은 것을 얻어냈다.

그 당시의 모습이

지금 트럼프 2기 행정부를 맞는

우리 정부에게 교훈이 되었으면 한다.